본문 바로가기

경험노트

기쁨의 교회 이요한 목사님

1124 창세기 강해(34) - 감사와 믿음 (추수감사주일 - 교회 절기) 

개명과 할례 

 

개명 : 새로운 존재

할례 : 새로운 관계

 

교회를 다니고 하는 것은 도전적인. 하나님에게 공급을 받으려고 우리는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우리에게 행하심

예수믿으면 돈 많이 벌고 잘자고 행복해야되는데.. 왜 어려움이 ? 

이게 새로운 존재 새로운 관계로 우리를 이끄시기 떄문에. 

 

86세 아브라함이 이스마일? 아이를 낳았음. 인간적 욕망으로 낳은 후 아들. 13년 하나님과 아브라함 단절의 기간. 이후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럼 이름 바꿔야되, 그럼 할례받아야 된다. 축복이 주어질거다. 

근데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게 되게 비현실적인 요구. 비웃었던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음. 순종함. 

어디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을까? 

 

할례 -> 몸으로 믿음 ->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믿고 의지하고 그 분을 인정... 나의 약속이 있다. 

 

가장 큰 감사는 입으로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 고통을 감내하며 하나님 안에 내가 속했다는 거 = 몸의 순종.

믿음의 여정으로 간 사람들은 입으로만 감사한게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함. 

 

더 중요한 감사의 표현 =(하나님 나의 주인) , 그 분이 약속하신 그 땅에 우리가 머물러 사는 것. 이것이 가장 위대한 감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좋아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고맙고 대견하다라고 했을 것 같다. 하나님 말씀하시니까 아브라함이 그냥 믿었다. 아브라함(=믿음의 조상)

 

믿음이 = 감사.

 

오늘 실천할 것 : 할례 같은 형식적인것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정말 삶의 변화를 언제나 이뤄내야겠다는 생각을 더 강화할 것. 

 

매일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날 정말 크게 사용하실 것임을 선포하는 것! 헬스장 갈 때! 항상 외치기! 

 

 

 

1110 창세기 강해(32) -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하는 이유

아브라함 돈도 많고 한데 상속자가 없다. 나 뭐지? 아무것도 아니네? -> 공허함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왔다.

우리 믿음 가운데 실존의 모습. 

 

권사님, 엄청 돈 많으신 분이 나 개척할 때 많이 도우주심. 이 분이 또 어떤 분 수십 억 교회 지어주고, 3층 대저택 살아서 막 목사님들 집 대주고, 

근데 그 분이 지금 반지하에 삼. 따님 다 선교사. 부도가 나서 다 없어짐 재산이. 노년에. 60~70대 잘 살다가 

단칸방.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계획과 느릴 수 있다. 그때 좌절이 찾아온다. 

 

아브라함이 경험한 것을 우리가 경험을 하게 됨. 아브라함이 믿음이 굉장히 좋았고 정말 영웅적인 일을 감당할지라도 그 뒤에 오는 것이 좌절과 공허가 찾아온다. 

 

하나님이 가라하신 곳, 거기에 계속 머물고 있는데 여기서 내가 어떤게 주어질까? 이런 의심과 염려들. 

그렇게 좌절하고 낙심하고 공허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찾아간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옴. 

 

요한 목사님 캠프에서 열매있다 열매있다 부산 사나이의 말씀. 

연결. 스티브 잡스의 커넥팅더닷. 

 

영적인 일상성. 요즘 운동 매일하고 있음. 3일 동안 운동을 뺴놓고 4일째 가면 너무 힘들어.

 

// 깨닫게 해주시고 설명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 떄문에 믿는 구조. 하나님 자체를 신뢰.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언약을 체결함. 

 

하나님이 제가 어떻게 믿어요?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열매 맺는거 어떻게 믿어?

하나님 왈 "내 아들을 십자가에." 그 정도로 나는 너를. 

 

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아.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세상 그 어떤 종교도 그 어떤 사랑도 그 약속도 처절하게 온절히 지켜내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 

 

믿음 = 시간적 개념.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들) 

 

최근에 목회에 대한 낙심.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도 없다. 

 

 

 

 

느낀점 : 

우리는 고작 내기에서 베팅을 하면 1) 얼마를 걸거나 / 내 손가락 장을 지진다 이런... 근데 하나님은 목숨을 걸어버렸음.  

 

 

 

1027 여호수아 강해 -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여호수아 -> 그냥 해석하면 안됨 -> 그냥 해석하면 쟁취해라 이겨라.

근데 이게 아니라 여호수아 말씀은 철저히 계산되. 말씀을 읽을 때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됨. 내 이야기로 들을려고 하면 안됨. 

 

오늘날 청년 성도들이 자꾸 "메시지"화. 정제 곡물 같은 -> 맛만 좋으면 ok 이런식으로 받아들임. 그렇게 되면 혼자 성경을 읽을 줄 몰라. 그 다음부터는 아는대로 믿고 살던 대로 믿음, 말씀 크게 묵상 없이.

 

사람들은 자꾸 메세지만 기억하려 해. 

내가 좋아하는 친구 = 윤형규 목사 => 흑백요리사, 

 

4번의 전면전이 여호수아서에 있음. 

 

여호수아 =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 예수 (줄임말) =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예수님 = 완성자,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구약 성경 = 율법 = 토라.

구약 성경의 완성자 = 예수님. 예수님안에서만 성취할 수 있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엄청나게 중요해. 예수님안에서만 영우너한 약속이있음. 예수님이 아니면 x 

 

예수님의 전쟁을 잠잠케. 우리를 잠잠케.

 

 

1. 순종 ->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나님이 여호수아한테 두려워 하지말라. 말씀에 순종.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2, 성취의식. ->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를 의식하는 것. 내 삶 = 약속 성취의 현장.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나를 통해. 말씀 성취 중 여러 단계에서 우리를 사용. 

 

아브라함 민족 주신다고 했는데 안줬음. 수 년뒤 요한목사님이 태어났어. 아브라함과 나는 상관이 없는 건데, 믿음으로 자손이 됨. 나는 이렇게 되면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는 거. 성경은 점진적 성취. 나로 말미맘아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 되고 있는 것. 우리는 윗세대랑 연결되어 있는 것. 

 

이단의 특징 = 현재성에 강조. 혹은 극단적 미래. 이단이 끊을려고 하는 건 => 교회의역사

오늘 너의 삶이 중요해. 이렇게 얘기함.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기도 응답. 

 

3. 전쟁을 멈추는 것이 우리의 승리 

 

예수님 오직 한분 밖에 없다.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주심. 예수님 붙잡고 예수님이 주시는 승리안에서..

여기에 동참하고자 하면.. 예수님안에서만 가능함. 목사도 아니고 교회 리더들도 아니다.

 

 

 

*가장 크게 느낀점 :

1) 두려워하지말라. 순종하라. 그냥 엄청나게 빨리 가는 거다.

2) 펫쪽에서의 못다한 꿈을 (폐업한 업체들의) 내가 이루는 거구나.

1013 창세기 강해(29) 안전한 삶 vs 완전한 삶

가나안땅만 들어가면 끝일 줄 알았지만, 그떄부터 시작이다.

연애는 여행 (예쁜 것만 봄)

결혼은 이민 (들어가는 순간 법적인 순간도 생기고 여러가지 해결해야되는 문제들이 생기고) 아름다움만 볼 수 없어.

구원 받는 성도의 삶도 동일하다. 

 

성경 아주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책인데, 2번 정도 반복되었다?? -> 2x 4번 정도 이상의 강조성

젖과 꿀이 따르는 가나안.

 

신앙은 좋을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고.. 자매들한테 신앙 있는 사람 먼저 x , 성품.인성 먼저 봐라

예전의 가르침 : 예수님 믿는 사람 -> 인성 좋아. 근데 절대 그렇지 않다.

본성이 사람들이 나옴.

 

아브라함 근본적인 본성 : 두려움이 많음. 그래서 거느린 사람들이 중심으로 데려가서 애굽땅으로 가는 그런 깜냥x . 근데 거기로 이주해야되는 상황. 안전, 편안을 추구하는 아브라함.  

 

사라를 정말 사랑했던 아브라함. 보통 자녀를 못낳으면 아내를 바꾸는데 그러지 않았음.

하달과 동침할 때 <- 사라가 시켰음. 정말 사랑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먼저 ? 생존이 먼저? 아브라함은 안전이 정말 중요. 자칫하면 사라도 죽을 수 있고. 안전을 먼저 강구하기로 결정을 하게 됨. 

 

아브라함은 사라를 누이로 속이고. 사라는 궁전으로 들어감 왕궁으로. 사라의 입장, 아브라함의 아내? vs 왕비 

아브라함 돈도 생김. 사라도 생김. 기근 피해서 왔는데 갑부가 됨. 사라도 아브라함 살면서 힘든게 많았을꺼야. 근데 고생시킨 남편. 사라는 65세에도 궁전을. 

 

하나님꼐서 그 꼴을 보시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하나님이 훼방을 놓으심.

 

아브라함도 갑부가 되고, 아내도 일이 잘 풀려. 근데 하나님이 방해하심. 

 

우리는 기독교 신앙 -> 우리 자기계발적언어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음. 기독교 신앙을 통해 -> "어떤 걸 성취" 

삶의 개선 -- >이런 건 기독교를 "수단" 

근데 하나님은 우리의 목적. xxx하면 yyy하면 -> 행복해져. 이게 아님.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제일 안전함. 배의 완전은 항해, 파도를 가르고 이럴 때. 

하나님은 안전한게 아니라 완전함으로. 

 

예수 믿는 거 안전한거 아니고 편안한거 아니다. 

 

 

 

느낀점 : 

// 하나님은 수단은 아니지만, 제대로 믿으면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성공하기 위해 기독교는 아니지만, 정말 성령이 내 안에 있으면 큰 성공이 반드시 올 수 밖에 없다. 

 

// 성경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올 준비가 완료되는 거임. 성경의 말씀은 문 같은 거다. 말씀이 내 안에 깊게 박히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거다. 내 성품이 변화하고 나의 생각이 변화하고 나의 관점이 변화하는 이런 것들이 결국 문을 여는 행위. 

 

// 아 이게 진짜 말씀들이 결국 진짜 실행과 변화로 이루어져야 함. 약간 신학박사 딸까? 막 이런 생각 듦. 차라리 안식년 같은 거 가져서 완전 그냥 파고드는 성경에. 

 

 

1006 창세기 강해(28) 구원 그 이후 

성경은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매우 일상적인 삶을 다루고 있음. 매우 이단 종파들은 환상의 삶, 일상을 벗어나서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고 얘기를 함. 예수님을 믿고 잿팍이 터지는 이런 것들이 근데 하나님이 만들어가고 세워가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많이 이단 종파가 얘기하는 것 = 우리한테만 구원이 있음. 

 

12:5절 말씀

아브람이 ~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주면 끝날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 결혼도 마찬가지. 사랑의 출발점인 것처럼. 신앙도 마찬가지. 집사 되고 장례 되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도착했을 때 북이스라엘. 북쪽은 초원 지역/나무도 많고/농사도 지을 수 있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사막지대. 아브라함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거주에 적합하지 않은. 

 

성경에 어떤 사람들도 고난 안받은 사람.x 즉 고난을 안주기 위해 선택한 (하나님이) 사람 없음. 

 

크리스천은 진공 상태가 들어가는게 아님. 세상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있음. 우리 가운데에 두려움이 계속 있음. 구원 이후에도 사람들 틈 바구니속에서 계속 산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이사가는 것. 하나님의 나라로. 

이 땅에서 완전히 안정된 끝은 없다. 

많은 교회다니면서 집회다니고 한데. 건물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바뀌어. 

 

구원 이후의 삶. 하나님이 가끔 만나주신다. 

 

자녀 출산 찬양, 직장 승진 찬양 이게 아니라 "생명있음을 찬양해" 

가장 기초적인 조건 = 생명. 여기서부터 감사를 할 수가 있느냐? 

참된 신앙인의 모습! 

 

감사의 영광 -> 일상의 감사로 색칠! = 구원~! 

아무리 인생의 쓴맛이 나도 감사합니다! 

 

<기도> 

고난은 우리에게 일상. 왜 나한테만? 이거 아님. 일상임. 구원받은 사람 뭐가 다르냐? -> 하나님 가끔씩 만나줌.

주님을 부르짖기 시작함. 

 

구원 그 이후에 힘든 일상들이 또 찾아옴. 

 

다윗이나 이런 사람들은 시련이 엄청 났음. 

 

 

0929 (창세기 강해 12:1~4)

엘리는 원래 하나님 음성을 들었는데 지금은 들을 수 없어. 들을 수 없으면 구원X

사무엘이 음성을 들음. 그 음성으로 순종 -> 이스라엘 공동체를 일으켜

하나님의 쓰임 받고 있는 것을 판단하려면 (도저히 납득되지는 않지만) 

1. 하나님 음성이 들리고

2. 그에 반응해서 행동하고 있는가

 

창세기 11:27 

 

11:31 

"하란" 

 

뜻 : 교차로 

 

하나님의 뜻이 한번에 이뤄지지 않아. 단계 단계 

우리분당교회 이찬수 목사님 -> 아버지가 목사님. 평소 목회를 열심히 해도 10명이 성도 안넘어. 그래서 금식기도 40일 하다가 돌아가심. (부흥시키보려고 햇는데)

 

아브라함을 보기 전에 믿음을 못가진 부모들. 가나안까지 가는데 더 큰 믿음이 필요했는데 베라같은 사람이. 

 

가나안으로 가는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아님. (우리의 생각)

하나님 원하는거 -> 하나님 말씀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

최종 목적지를 바로 알려주지 않아. 완결을 보여주지 않아. 죽는 그 순간까지 -> 왜? 하나님과 함꼐! 

만약 완결을 보여주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아 

 

창세기 12:2 

 

홍성건 목사님 -> 3쨰 아들 인데 1,2,3째 전부 목회자 되지 않을래? 했는데 -> 다 거부 -> 큰 상처. 

아브라함의 위대함 => 아버지를 떠났다 X 고향을 떠났다 X 이게 아니라 말씀을 따라! 그 하나님과 함께! 

 

말씀하신 하나님과 함께 했느냐 ? 이게 위대한 것

하나님 말씀 듣는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하나님 말씀이 들릴 때 = 순종한다. 

 

단번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역사적인 여러 과정들을 통해서. 목적지와 결과를 아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중요. 

 

12:4

 

느낀점: 

하나님 -> OS..

말씀 OS. 

 

-기쁨의 교회를 키우고 싶은 그런 느낌? 이제 남영동에서 첫 스타트를 하는데 , 스타트업의 day1 

-INFP 목사님과 ENTJ 바울. Key man이 필요함. 

 

0901 

서리집사 -> 훈련받는 사람들. 훈련생. 교회의 일꾼. 

교회에서의 직급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동유럽 미션트립 / 

우크라이나 400명의 고아원. 13명 가게됨. 

 

창세기 9장 18-29절 "덮어줌의 미덕"

 

포도는 주식이 아니야. 일종의 디저트. 곁들여서 먹는 음식. 이걸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충분한 음식이 아님. 

노아의 명성에 맞지 않는 술취함. 그래서 아들이 하체를 덮어줬는데 노아가 대노. 그래서 이 구절들을 활용해서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노예를 만드는 것을 정당화 시켰음.

 

부당해보아는 상황 -> 노아가 술먹고 지가 취해서 자식한테 분노 

 

제네시스 -> 근원이라는 뜻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 유대인. 사피엔스 왜 열광해? -> 무신론의 제네시스. 

 

모세가 -> 이스라엘 사람들을 출애굽 할 떄 가나안 백성들을 만나 . 

애굽(이집트문명) -> 의 노예야. 부품과도 같은 존재야 너무 슬퍼할 필요 업어. 이러한 세계관 학습(이스라엘) 자유를 가지고 가는데 광야. (세계관을 새롭게 함) 

 

가나안 = 지역명,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 노아는 완전한 자다. 의인이다. 이런 평가. 근데 이런 사람이 술먹고 벗고 자고 있다? 하나님이 홍수를 해서 심판을 햇는데 노아는 그 이후 죄. 내면의 죄. 욕망의 문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어. 노아가 농사를 지었고 성공했고 포도도 심고, 포도주도먹고. 근데 그때 무너지는 것. 

 

창세기 아담 -> 과실을 먹고 타락 , 성공 이후에는 잠겨져있는 욕망들이 나타나기 시작. 

서초의 팔팔생선구이. 계산하고 나가면 말씀이 있는데 -> "선주를 알거든, 넘어질까 조심해라" 

 

생선 팔아서 빌딩을 지음. 결국 무너짐이라는게 경쟁자나 이런게 아니라 내 안의 욕망. 하나님 없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자만.  

 

술 취하지말라, 방탕한 것이나.  술취한 것의 정의 ? 정해진 것 없음 사람마다 달랐어. 

 

술 마심 자체 = 술 취한 것의 일부. 그래서 성경에서 술에 대해 좋은게 1이라면 , 안좋은거 100. 100배 안좋다고 얘기함. 유럽에서는 술이 물보다 싸. 술이 우리를 넘어뜨리게 할 수 있고.. 

 

우리 안에 있는 죄에 대해서 진지하게 임한다면, 술에 대해서 멀리하는 것이 좋다.

 

술은 조심해서.. 술은 그어줄 수 있어야. 우리 안의 죄성을 매번 기억하면서 세상 문화를 받아들이는 그런 지혜와 교훈.

 

성경에서의 하체는 -> 성기의 완곡한 표현. 

성경은 덮어줌의 이야기 -> 납득해주고 -> 이해할려고 애쓰고.

 

우리는 덮어줬는데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그 이야기들로 하나님의 이야기로 만들어가신다

 

노아가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무너짐. "술" !!!!! 

늘 꺠어있음. 조심스러움. 늘 죄에 빠질 수 있는 약한 사람. 

 

느낀점

토요일은 절대 12시 넘기지 않을 것 -> 담날 주일에 집중

그리고 토요일보다 금요일. (5시) 

 

질문

성경 -> 성리학의 책. ?

 

0827

 

하나님은 창조를 "분리"  

나누심을 좋아한다. 하나로 되어있다는 것을 나눔. 위 아래로 나눔.

 

성경이 보여주는 것 = 거룩한 것. 

계층적으로 더 아름답고 숭고한 것에 더 나아가는 것. (근데 세상사는 수평적인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싫어해)

 

더 높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어. 

 

더 높고 숭고한 것이 있다. 상하 구별이 있다. 

상 : 거룩 -> 하나님께 나아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위대하심. 저 위의 세계가 존재. 

하나님은 창조적 질서속에 상과 하를 나누었다.

 

상하의 "분리" -> 분리는 공간을 만들어냄. 분리를 통해서 공간을 만드심. 단절, 이별, 상호 간의 거리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안좋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떄로 분리를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냄.

 

나는 현실적이지 않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무조건 뭐 사랑이라면 같이 있어야 되고. 나는 싫은데 좋아라고 하는 것도 별로. 서로 적당히 선을 유지하는게 필요할 수도. 거기서 공간이 생김. 직원의 배신? 사람의 배신? = 창조적 분리. 

더 좋은 인연, 더 좋은 직원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심.

 

빛의 원형 -> 넷쨰날 해와 달을 만드심.

둘쨰날 하늘 -> 그 다음 새를 만듦

땅을 만들어 ? -> 그 다음 동물을 만들어 

 

공간을 만들고 -> 그 안을 채워나가심. 이게 하나님의 일하심. 

 

우리는 위치를 갖게 됨. 대한민국이 태어났어. 피투 -> 던져진 삶. 이 얼굴 고르지 않았어 

내가 어떤 성향을 갖고 태어날거라고 하지 않았음. 하나님이 각자 위치에 자리 배치를 해주었음

내가 가장 핸디캡을 받아들이면서 "감사"로 성장함. 

원만, 불평이 아닌 내게 진짜 이 삶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 성장 ! => 내 위치를 "감사"

 

영국 한 올림픽 대표 -> 주일 예배 때문에 참여안했다고 -> 배신적. 

이 사람 200M , 400M -> 금메달

"나는 빠르게 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걸 느낀다. 사슴같은 다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 

옆 사람을 이겨서 기쁜게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게. (불의 전차 영화 추천!!!)

 

내게 주신 삶의 자리라면 이것도 OK 

3달란트 OK, 4달란트 아니여도 괜찮아. 다음에 더 주시겠지.

 

우리에게 위를 볼 수 있는 축복. 분리된 공간을 주목하고 그 공간을 채울 주님을 주목.

내가 있는 이 위치안에서 일하는 지혜를 배우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 위치가 다 높은 곳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

 

 

 

--

 

0813 (초원 비저너리스) 

 

10월 첫째주-> 이사를 가려고 해
9천만원 정도 모임. 공사를 이제 시작함

 

(설교 주제) 
빛이 있으라! 
빛은 생명이다! 

1)
빛으로 시작된 -> 식물 -> 동물 -> ... 
생태계의 고리! 빛! 

2)
빛은 생명이고 가장 근원적이다.
빛 = 에너지 
빛 자체로 열, 갖고 있는 에너지가 있음

3)
빛 = 의미
꽃은 색깔이 있음. 근데 이 색깔을 보는 것은 우리가 빛으로 보게 됨. 
성경이 보여지는 빛은 = 심오하고 엄청나게 중요한 것.

빛은 어둠에서 나와서 어둠에서 생명이 있게 하고 
빛은 가장 중요한 창조물이다. 
성경에서의 일관적인 주장 

빛은 진리를 상징함.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음
계몽주의 => 진리의 빛이 (중세의 1,000년 어둠에) 비추어졌다.

요한복음 8장 -> 너희들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 = 진리의 빛. 사탄은 이 빛을 가림. 어둠 가운데로 데려감. 

빛은 생명. 빛이 비추어지면 살아나는 것
우리가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mbti =  J는 확실. 5분만에 만들 수 있는데 날을 계획하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만드신다. 빛! 
빛을 통해 생명부터 만들겠다.

생명의 빛
진리의 빛
영광의 빛 
-> 우리에게 비추어서 반사.

"일어나라 빛을 바라봐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에게 임하다. 

생명의 빛이 임해서
너희에게 생명이 비추어서 수 많은 사람을 빛나게 할거다.

우울한 일, 슬픈 일 많은데 -> 하나님이 비추어서 ->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

 

여호수아 4장 1-24절


우리 교단에서는 십자가를 거는 것을 금지하고 있음. 왜냐하면 십자가가 우상처럼 안느껴지게
성경은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장려하였음 왜 ? >> 기억하라!!

하나님 능력을 위한 기념비 >> 안 그러면 까먹으니까

암스트롱이 달에 가서 돌을 가지고 왔음. 비싸 왜 ? 인간이 가지고 올 수 없는 돌이니까

기념 = 믿음의 일기장!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까먹을데가 많다.

목사로 살면서 재정적으로 어렵고 기죽을 때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고...
정말 어릴떄 가난하게 살았다. 방 한칸에서 온 가족이. 20가구가 살았는데 푸세식 화장실 2개..
지금의 나의 모든 것들이 감사

하나님 구원을 위한 기념비 ->

물은 죽음. 물은 디딜 수가 없음 solid 하지 않으니까.
물안에 돌이 있어서 우리가 서있을 수 있어 그래서 그 돌을 가지고 와라.
구원을 기억해라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돌이 12개 -> 우리가 12개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가족이다
선교적 기념비.

하나님안에서는 모두 같은 민족. 개별적으로 하나님은 구원을 해주시지만 교회안에서 모였을 때
다같이 민족.

다음세대를 위한 기념비.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 -> 다음 세대에 어떻게 비춰질지!! 정해진다.

교회의 상징 = 십자가 로고
패션에서도 로고가 정말 중요하듯이..
십자가는 정말 엄청난 브랜드 로고.

기억이 우리를 만듭니다.
우리가 우리를 인지하는 건 기억.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하나님 홀딩스. 지져스 버크셔웨이 조직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