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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노트

[Weekly BIZ] 지도자여,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라… 그리고 다시 돌아오라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3/2015012301909.html


[분석]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 동양에는 노자.서양에는 플라톤.

노자는 조금 더 공부해서 인물을 파악해야 될 것 같고 플라톤은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원칙에나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철학의 중요성, 실체를 보러 태양을 본 뒤 다시 동굴에 들어와서 노예들을 구제해주는 것(공공선).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철학 공감,공유가 된다.


소크라테스의 사명을 확인하게 되면서 더 가치있고 더 우선시 되어야하는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추구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요즘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절제를 많이 연습하고 있다.절제를 하니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평화와 여유가 찾아오고 낭비없는 삶이 시작되는 중.


철학을 끝까지 내 손에서 놓지 않고 삶을 최적화시켜 진정한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매순간,매시간,매장소 정성을 다해야겠다.


[요약]

인문학이 태동할 때,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학문으로 출발했다.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인간이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이란 뜻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아포리아'라 규정한다.배가 좌초되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를 고대 그리스인은 아포리아라고 했다.아포리아는 그보다 더 심각한 '길 없음'의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말한다.


인문학은 어떻게 빨리 노를 저어서 이 아포리아를 극복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잠시 노를 내려놓고 밤하늘의 별을 볼 것을 권한다.내 인생의 좌표는 어디에 있는지.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스 3대 '아포리아'

1.페르시아 전쟁

2.내전(아테네 vs 스파르타)

3.참주(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등장(소크라테스 독배를 들고 죽음)


소크라테스 보병으로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참여.포위를 당한 포티다이아 시민들은 양식이 떨어지자,서로 잡아먹었다.소크라테스는 충격을 받았다.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시기에 '탁월함'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소크라테스는 절제와 헌신,정의의 실천과 지혜의 추구가 진정한 탁월함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소크라테스 " '지혜와 진리와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당신들을 부끄럽지 않소'라고 지적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의 리더쉽 "쇠사슬 끊고 돌아보라.환영의 실체를 보라"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플라톤은 스승을 죽인 아테네를 떠나 이집트,시칠리아,이탈리아 남부,그리고 크레타 섬을 돌며 넓은 세상을 본 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다.플라톤은 아테네 외곽에 정착해 아카데미아를 연다.거기서 쓴 책이 바로 '국가' 총체적 아포리아에 빠진 아테네를 구하기 위한 책이었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이상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해야 한다."


통치자: 대내외적으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전문지식

수호자: 소신을 보존하는 용기(어떤 상황에서도 소신을 버리지 않는 것)

시민: 절제 (질서를 지키는 것)


이는 국가나 개인의 차원에서 더 나은 부분이 더 못한 부분을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후반부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주제를 다룬다.'이상 국가를 통치할 수호자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계급 간의 상호 참견 금지가 아니라,지도자가 적절한 교육을 받고 참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그 권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약자와 아픔을 같이하는 게 인문학적 삶

"스스로 쇠사슬을 끊고 뒤를 돌아보라.횃불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환영의 실체를 보라.지금까지 당신이 믿고 있는 실체는 그림자에 불과했다.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어두운 방굴 밖으로 나가서,태양을 보라"고 말했다.


플라톤은 "교육이란 혼의 지적 기관을 어떤 방법을 써야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전향시킬까에 대한 기술이지,그 기관에 시력을 넣어주는 기술이 아니다"고 했다.

지도자를 위한 교육은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눈앞에 펄쳐지고 있는 환영의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쇠사슬을 끊은 다음,몸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실체를 보란 것이다.


지금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을 본다면,이는 전향을 한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여기까지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이다.나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인간이다.그런데 그다음 단계가 있다.인문학의 두 번째 단계다.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을 한 다음에는,다시 방향을 돌려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그 동굴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노예처럼 살고 있는 불쌍한 내 형제 자매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고,가능하면 그들이 쇠사슬을 끊고 어둠의 동굴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방향을 돌려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특별히 우리 사회 약자들과 함께 그들의 아픔에 함께 참여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문학적 삶이다.인문학적 삶은 내가 누구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어두운 동굴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추구하는 두 번째 삶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