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인문학이 고전이라는 것도,사람 사는 얘기를 하는 것도,결국 사람을 향하는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다.좀 새로운 관점을 알게됬다는 것은 그 커뮤니케이션, 관계 자체에 주목한다는 것이다.내년에는 내가 주최로 인문학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예술이나 고전쪽을 많이 공부함으로써 뇌를 좀 몰랑하게 만들고 사실 이런 부분에서 한방이 빵 터진다는 것 또한 다시 공감하게 되었다.제일 공감했던 문장은 지금 써먹을 비전이 없어보이는 걸 많이 해놓으면 그게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내가 주로 쓰는 문장으로는 비슷한 뜻으로 당장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한방 터진다는 문장이다.인문학이란게 사실은 특정 학문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됬고,결국 관계,대화가 포인트라는 것을 알게되었다.또 특정 기간에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요구되는 철학적 질문이며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나의 총체적 여정이라고 해야될까?
[요약]
<1>
이유를 캐는 데 관심이 있어야 인문학을 하게 되는데,캐고캐고 들어가면 결국 고전 공부까지 가는 것이 정상적인 경로라고 생각한다.거기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지만 캐고 들어가서 보니까,잊어버린 낯선 세계였다는 신선함이 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전공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서양 고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인문주의의 원어가 휴머니즘인데,휴머니즘이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그 어원인 휴머니타스가 라틴어인데 인간됨,인간성을 뜻한다.
따라서 어원으로 보자면 고전을 공부하는 게 인문학이다.
<2>
'한국의 인문학'은 따로 있어야 한다.그래서 한국 인문학은 동서양 고전을 다 공부해야 한다.
그리스 고전 인문학은 문과 학문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인문학 정신이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우리 인문학의 큰 문제다.동양 인문학 교수들은 그쪽대로 서양식으로 세분화된 구조 속에서 공부한다.
이 나라에서 인문학이 뭘 기여할 건가 의식을 하지 않는 한,지금처럼 대접 받아도 별로 억울할 게 없다.
함께 얘기하는게 인문학이다.인문학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을 빼면 성립 못한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전형적인 인문학자였다.플라톤의 대화에서 보듯이,남과 이야기하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는다.그게 다이얼로그이고 인문학이다.
커뮤니케이션의 1차 상대가 누구인가 하면 한국말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다.그래서 언어와 문화와 인문학은 떨어질 수가 없다.
사실 앞으로 더 필요한 게 저녁때 모여서 책 한 구절 놓고 같이 토론하고 얘기하는 것이다.
삶을 의미있게 꾸미려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필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조그만 독서 모임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전국에 많이 생기느냐 하는 쪽으로 가야한다.
지금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어떤 점에서 문명사적 전환에서 비롯한 필연.
BC8세기경 문자쓰기 시작,(기억력이 굉장히 좋았음)
문자 발명되는 순간,(빨리 배운다는 게 머리 좋은거)
컴퓨터 세대(빨리 배우고 계산하고 이해하는게 중요성 격감,검색하면 되니까)
이제는 패턴의 습득이 아니라,여러 요소들의 조합을 어떻게 잘 하느냐,남이 못하는 구성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졌다.지금부터 지능에서 중요한 것은 남이 못 본 것을 연결시키거나 없던 것을 상상해내는 능력이다.
절대 조급해서는 안된다.
<3>
지금은 '써먹을' 비전이 없어 보이는 걸 많이 알수록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일본 TV를 보니까 어느 시골 현인데 삼국유사 독회를 하더라,그것도 일반인들이 몇 년째 모여서 하고 있더라.우리도 그렇게 되면 인문학이 제대로 뿌리 내리는 것일 것이다.
성과가 멋잇게 나는 쪽으로 가지말고 , 그런데 흔들리지 말고 시골이나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인문학을 읽고 입을 열 수 있게 하는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꾸준히 조금씩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게 진정한 인문학이다.
"평소에 여러 분야의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편이다.전공 쪽으로는 역시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30대부터 지금껏 계속 읽고 또 읽는 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디세이다.
인문학은 인식된 내용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켜 거기에 부여된 기왕의 의미를 캐내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면서 그것들을 좋음,나쁨,옳음,그름의 가치평가가 이루는 격자망 안에 엮어 넣는 것이 인문학이 하는 일이다.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은 인문학이 인간 자신에 관한 사실 인식에 있엇도 과학의 성과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4>
인문학은 진정 좋은 것이 무엇인지 미리부터 답을 가지고 있는 학문이 아니다.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인문학이다.좋은 것,우리가 실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의 일이다.
인문학이 과학과는 구별되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좋은 것을 쉽게 찾아내 확정하지 못하고 모색을 계속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엄성이 존재하는 방식은 과학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 존재하는 방식과 다른 것뿐이다.그것은 인간이 어떤 자연적 특성을 집어 내,그 특성의 발휘를 앞으로 계속 귀한 것으로 여겨 권장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행위에 존재 근거가 있는 것이다.
마치,민주주의가 전혀 허구가 아닌 까닭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두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정의라는 이념 역시 마찬가지다.정의를 실현하려고 애쓴 사람들이 이룬 사회와,부정의가 횡행하는 사회의 사이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면, 정의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뜻에서 인간의 존엄성도 그저 허구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fact'는 어원적인 수준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것,행해진 것,그래서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의 뜻을 갖고 있다.
미래를 향해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뜻한다.
침팬지와는 1%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그 조그만 차이가 바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의미 있는 스토리를 꾸며 가며 살아가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내 답은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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