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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나'에서 머무는 철학 vs '이웃'으로 확장되는 철학

철학을 정립할 때 '나'에서만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그러나 더 욕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결국 철학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이웃'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난 더 큰 성공을 하고 더욱 행복하고 더욱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수없이 목격한다.음 당연한 것 같다.혼자 잘먹고 재밌게 잘살려면 100만원이 충분하다고 가정했을 때 목표가 나에서 머문다면 100만원일 때 충분하다.하지만 불우한 이웃을 도울려고 한다면 200만원이 필요하다.그리고 이렇게 내가 책임지고 싶은 사람의 수를 늘려간다고 생각해보면 100 x n의 비용이 필요하다.10억명한테 영향을 끼치고 싶으면 1000억이 필요하다.


그럼 고민하게 된다.혼자 잘먹고 잘 사는데에는 100만원만 필요했던 것인데 이는 단순히 알바만 해도 먹고산다. 근데 누군가를 도와야된다면 알바로 시간을 자본화시키는 것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무엇인가 시간 대비 생산성이 높은 일을 생각해야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노력보다 엄청난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기존의 아이디어보다 훨씬더 뛰어난 아이디어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각할게 많아지고 할게 많아지고 잠시라도 자신을 세속에 그리고 현실적인 유혹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일상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비효율과 쓸데없는 것들을 제거해나가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 목표는 점점 이웃으로 확장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돕는 재미와 그 보상을 느껴본 사람들은 그 중독을 벗어날 수가 없다. 목표를 이웃으로 확장시켜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은 많은 정신적 훈련을 필요하기도 하지만 헬스장에서 근육을 찢으며 고통을 이겨내고 멋진 몸을 만들듯 결과적으로 그런 뿌듯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인생은 당연히 내가 중심이다. 근데 우리가 우리로서 더 명확히 정의되고 존재하게 되려면 결국 상생하지 않으면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남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면 1+1 = 1조의 가치를 만들 수도 있다..


그 어떤 대상도 다른 것들과의 관계없이는 정의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연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당했다면, 그것은 제 시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군중은 연설에 숨을 죽였다. 그들 마음속에 숨겨졌던 자비와 희망의 불씨에 다시 불을 붙였다. 몇몇 사람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연설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여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지만 하나의 미국이란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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